(아래 글은 4월29일 국회 앞 피켓 시위에 참가한 김대운 목사(수원 경성교회)의 태아여성보호국민연합과의 인터뷰 내용)
최근 우리 사회는 낙태를 ‘임신중지’나 ‘여성의 행복추구권’이라는 수식어로 포장하며, 산모가 져야 할 윤리적 책임을 희석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낙태는 수식어와 상관없이 태중에 잉태된 소중한 생명을 끊어내는 행위입니다. 최근 입법화가 시도되는 '약물 낙태'는 간편함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산모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부작용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만삭 낙태까지 허용하려는 법안이 발의된 작금의 현실은, 생명 경시 풍조가 이미 위험 수위를 넘었음을 보여줍니다.
태아는 '세포 덩어리'가 아닌 '하나님의 형상'!
낙태의 폭넓은 허용은 단순한 문화적 변화를 넘어, 생명을 해치는 행위가 제도와 산업으로 합법화됨을 의미합니다.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바라보는 목회자로서 이는 참으로 두렵고 비통한 일입니다.
물론 자기 결정권과 개인의 권리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리는 타인의 생명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행사되어야 합니다. 태아는 임신 3주면 심장이 형성되고, 6주면 그 박동 소리를 들려줍니다. 9~12주면 장기와 얼굴 윤곽이 뚜렷해지는 엄연한 인격체입니다. 단지 여성의 몸 안에 있다는 이유로 태아를 선택의 도구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성도들에게 태아가 하나님의 형상임을 분명히 가르쳐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도 태아는 우연한 세포 덩어리가 아니라, 우리와 동일한 심장과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는 진실을 알려야 합니다.
비난보다는 대안을, 구호보다는 사랑을!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어린 산모들이 불안과 두려움 없이 그 생명을 돌볼 수 있도록, 교회가 구체적인 보호를 제공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일은 한국 교회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미혼모를 위한 시설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일뿐만 아니라, 직접 운영이 어렵다면 현재 국가에서 지급되는 현실적으로 부족한 수당을 교회가 물질적으로 보완해 주는 것만으로도 미혼모들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섬김을 통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이 찬송을 받게 되고, 복음의 설득력 또한 더욱 높아질 것이라 확신합니다.
지금은 교회가 깨어나 행동해야 할 때!
안타깝게도 오늘날 많은 교회가 사회적 비판이나 정치적 부담, 혹은 교회 성장과 무관하다는 이유로 이 문제에 소극적입니다. 그러나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라고 했던 것처럼, 생명을 지키는 일은 이 시대 교회가 감당해야 할 가장 시급한 사명입니다.
강도 만난 이웃을 돌본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버림받은 산모와 아이들을 교회가 품어야 합니다. 당장은 손해처럼 보이고 부흥과 거리가 멀어 보일지라도, 이 길이야말로 가장 성경적인 부흥의 길이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확실한 방법입니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으로!
현대종교 탁지원 소장님은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낫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이단 대처뿐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일에도 더 많은 성도와 교회의 '작은 한 걸음'이 절실합니다. 우리가 함께 연대할 때, 이 땅의 죽어가는 생명들을 살리는 거대한 울림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래 글은 4월29일 국회 앞 피켓 시위에 참가한 김대운 목사(수원 경성교회)의 태아여성보호국민연합과의 인터뷰 내용)
최근 우리 사회는 낙태를 ‘임신중지’나 ‘여성의 행복추구권’이라는 수식어로 포장하며, 산모가 져야 할 윤리적 책임을 희석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낙태는 수식어와 상관없이 태중에 잉태된 소중한 생명을 끊어내는 행위입니다. 최근 입법화가 시도되는 '약물 낙태'는 간편함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산모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부작용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만삭 낙태까지 허용하려는 법안이 발의된 작금의 현실은, 생명 경시 풍조가 이미 위험 수위를 넘었음을 보여줍니다.
태아는 '세포 덩어리'가 아닌 '하나님의 형상'!
낙태의 폭넓은 허용은 단순한 문화적 변화를 넘어, 생명을 해치는 행위가 제도와 산업으로 합법화됨을 의미합니다.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바라보는 목회자로서 이는 참으로 두렵고 비통한 일입니다.
물론 자기 결정권과 개인의 권리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리는 타인의 생명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행사되어야 합니다. 태아는 임신 3주면 심장이 형성되고, 6주면 그 박동 소리를 들려줍니다. 9~12주면 장기와 얼굴 윤곽이 뚜렷해지는 엄연한 인격체입니다. 단지 여성의 몸 안에 있다는 이유로 태아를 선택의 도구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성도들에게 태아가 하나님의 형상임을 분명히 가르쳐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도 태아는 우연한 세포 덩어리가 아니라, 우리와 동일한 심장과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는 진실을 알려야 합니다.
비난보다는 대안을, 구호보다는 사랑을!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어린 산모들이 불안과 두려움 없이 그 생명을 돌볼 수 있도록, 교회가 구체적인 보호를 제공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일은 한국 교회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미혼모를 위한 시설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일뿐만 아니라, 직접 운영이 어렵다면 현재 국가에서 지급되는 현실적으로 부족한 수당을 교회가 물질적으로 보완해 주는 것만으로도 미혼모들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섬김을 통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이 찬송을 받게 되고, 복음의 설득력 또한 더욱 높아질 것이라 확신합니다.
지금은 교회가 깨어나 행동해야 할 때!
안타깝게도 오늘날 많은 교회가 사회적 비판이나 정치적 부담, 혹은 교회 성장과 무관하다는 이유로 이 문제에 소극적입니다. 그러나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라고 했던 것처럼, 생명을 지키는 일은 이 시대 교회가 감당해야 할 가장 시급한 사명입니다.
강도 만난 이웃을 돌본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버림받은 산모와 아이들을 교회가 품어야 합니다. 당장은 손해처럼 보이고 부흥과 거리가 멀어 보일지라도, 이 길이야말로 가장 성경적인 부흥의 길이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확실한 방법입니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으로!
현대종교 탁지원 소장님은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낫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이단 대처뿐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일에도 더 많은 성도와 교회의 '작은 한 걸음'이 절실합니다. 우리가 함께 연대할 때, 이 땅의 죽어가는 생명들을 살리는 거대한 울림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